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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동문회, 완도 봄나들이 < 수필 >-

: 안정산

: 09-04-24 17:07

: 2156

완도 봄나들이

-2회 회장 : 正岩 안 정 산 -
오늘은 고등학교 동문들과 완도 여행하는 날이다. 상무지구에서 8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처음 보는 얼굴과 오랜만에 눈에 띄는 후배도 먼발치에 보인다. 어느새 이마에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 희끗희끗한 흰머리에 이마까지 탈출한 동창의 모습, 속 알머리 없는 후배도 버스에 오르지 않고 여기저기서 서성거린다. 나는 후배를 몰라보고 고개 숙여 악수 청했다가 웃음거리가 된다. 또 다른 후배마저 선배로 착각하려는 순간, 4년 후배입니다. 라며 겸연쩍게 인사를 건넨다. 버스는 30분 늦게 송정리 방향으로 출발한다.

나는 봄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마음껏 느끼려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가로수 벚꽃나무는 모든 향취와 하얀 꽃잎마저 다 주겠다는 듯, 꽃가루가 되어 연신 뿌려진다. 그 느낌은 어찌 내게만 다가오랴! 벚꽃은 봄의 상징이요, 축제의 한마당이다. 상춘객 기쁨과 행복마저 봄의 절정에 매달아 놓게 한다. 과수밭 배꽃도 수줍은 듯, 살며시 하얀 얼굴 내밀며 우리를 영접한다. 그러나 농부의 마음은 배꽃의 아름다움보다, 가꾸는 일손뿐 아니라 수확과 판매가격이 어깨를 더 짓누를 것이다.

꽃들의 향연에 푹 빠져 있노라니 영산포 다리가 내 눈을 번뜩이게 한다. 어려서 고향에 다닐 때면 영산포는 파시를 이루었고, 남부지방 건어물. 생선시장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다. 우리 부모님도 먼 거리지만 간혹 이곳에서 생선을 사 오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30년 전, 농업용수 부족으로 영산강 하구언을 막아 버렸다. 강물은 썩은 담수가 되었고 이곳 생선시장도 흔적만 보일 뿐이다. 그 뿐이랴, 강변에 정박된 그 많은 배들은 어디로 떠났을까, 돛단배 한척도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 유채 꽃씨가 바람결에 날아 왔는지, 영산강 상류의 널따란 뭍에는 노란 꽃 잔치가 벌어졌다. 벌 나비는 오는 둥 마는 둥, 가거나 말거나, 관심마저 없고 놀이패 지시대로 오직 관광객만 기다린다.

나는 이곳을 지날 때면 청년시절 추억의 아름다움이 머리를 스친다. 내가 영산강변의 동강면 몽탄 선착장 근처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끝없는 갈대밭과 광활한 뻘밭에서 해파리. 짱둥어. 꽃게 등을 잡았던 시절이 너무나 그립다. 그 옛날 영산강은 바다와 버금가는 어장의 보고요, 철새가 날아드는 자연생태 학습장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 생태계를 저버린 지방자치제가 얼마나 식견 좁은 정책인가를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하게 한다.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나는 3년 전, 45일간 자동차로 유럽여행을 하면서 선진국의 백년대계 정책을 경험하고 살펴보았다. 네델란드 운하 발달에 의한 관광사업과 세계적 화훼단지처럼, 내 고향 영산강에서도 요트가 뜨고 여행객을 나르는 관광배가 활발히 전개되는 관광 사업이나 산업 발달의 기적이 이루어지길 기원해 본다.

나는 명상에 젖어 멍하니 차창 밖을 바라보는데 한 폭의 동양화가 눈길을 막으며 복잡한 뇌리를 바꾸어 놓는다. 언제 보아도 묵화처럼 보이는 월출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과 비바람 몰아쳐도 지금껏 천황봉은 지조를 지켰건만, 산줄기 등산로는 곳곳에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어찌하여 자연의 아름다움만 훼손했겠는가 말이다. 편하게 살려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한 줌의 흙이 되지만 우직한 자연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들판 곳곳에 휴농지가 많아 보인다. 흙에 살리라던 농부는 논밭 갈아놓고 어디서 쉬고 있을까, 자연에서 경작하던 농작물과 힘 겨루다 지쳐 비닐하우스에 숨어 일한다는 말인가. 자운영은 널따란 들판을 연분홍 꽃밭으로 아름답게 수놓아, 벌. 나비 일터 만들고 그 뿌리는 지렁이와 함께 호흡하고 숨 쉬며 유기농토 만든다니, 농부의 마음을 일석삼조로 흐뭇하게 한다. 보리밭은 푸른 초원을 이루었다. 벌써 보리 목은 청년처럼 우뚝 서서 머리깃털 세우고 하늘을 향한 그 희망은 수확을 기다리는 농민과 함께 할 것이다. 우리 어머니를 평생 동안 고생시켰던 마늘 밭은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잡초가 무성하다.

오늘이 남창 장날인가 거리가 북적거린다. 어려서 어머니 손잡고 따라다녔던 옛날 장과는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아매사탕. 비과. 뻥트기 팔던 그 아저씨는 지금도 장사하는지 궁금해진다. 장안 한 복판에서 누더지 옷 입고 여자 얼굴로 분장한 각설이 엿장수는 어찌나 웃겼던지, 나는 어머니와 당기고 버티면서 눈총 받던 추억이 생각난다.

완도 다리를 건너니 작은 공원에 조성된 철쭉 밭은 빨갛게 물들여 절정을 이룬다. 봄 바다는 훈풍과 함께 푸른 음반위에 고요한 음률이 흐른다. 위대한 자연의 지휘자가 폭풍 같은 멜로디를 어느 결에 표현할지라도, 지금 바닷가 양식장 주변에는 똑딱선이 푸른바다를 가르며 바삐 움직인다. 갈매기도 평화와 자연을 만끽하며 자기만의 무대인 듯 작태를 뽐내며 창공을 날은다. 바다 건너에 고마도와 사우도는 완도에서 큰 섬들이다. 지금도 완도는 선인들의 그림솜씨가 살아 숨 쉬는 듯, 어느새 오색 물감으로 섬 전체를 덧칠하여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 놓았다. 어찌 푸른 산에 하얀 물감을 그리도 많이 뿌려 놓았는지는 오직 화가의 붓끝 맛이란다. 완도는 우리나라의 세 번째로 큰 섬이며 계절 감각이 뚜렷해 보인다. 아직도 화가의 숨결이 담겨있었으며, 작은 섬들은 화폭이 되어 갤러리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섬 지방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인용하기로 했다. 해발 644m 상황 봉을 등산하는 팀과 바다를 벗 삼아 술과 함께 풍류를 읊겠다는 잔류 팀으로 나뉘었다. 나는 발목 아프다는 핑계로 홍어 무침에 막걸리잔 나누는 자리에 덥석 주저앉았다. 모처럼 선. 후배 간에 야유회 잔치가 벌어진 것이다.

2009. 4. 12. - "총동문회 여행"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