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동 우리 집 가는길
: 안정산     : 09-04-09 14:35     : 2235    
충효동 우리집 가는 길!

나는 간혹 자동차를 몰고 담양 고서를 지나 광주호수 방향으로 달려 본다.
이른 봄이면 노란 개나리꽃이 만개하고 여름에는 도로변에 심어진 백일홍 사이로 들판에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어, 농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나는 사람 입맛 돋우며 한가로움만을 자랑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담양 가로수 상징인 메타세쿼이아는 이곳 선비들의 의지처럼 푸르고 청렴함이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 없이 향토를 지켰다는 듯, 우뚝 솟아 자신있게 뽐내고 있다.

고서 평야를 가로 지르니 광주호수가 치마폭처럼 펼쳐진다. 계절 따라 철새가 날아들어 자유와 평화를 즐기고 은빛 물결과 녹색 푸르름은 누구에게나 넉넉함을 보여준다. 때에 따라 지나는 사람 마음을 일깨우고 변화를 일으켜 준다더니만, 나에겐 2년 전부터 광주호수 상류 뭍에 몸 마저 내려놓게 했다. 그곳 오른쪽에는 여러 종류의 동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널 따란 자연 생태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곳곳에 꽃밭과 잔디밭 그리고 큰 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쉼터와 학생들 학습 현장이 된다.

역사의 산실, 지실마을은 사계절 푸른 노송과 함께하며 어머니 품처럼 500년 역사를 지금껏 보듬고 있다. 서양 화폭처럼 펼쳐놓은 무등산자락아래 광주호수 상류에 자리한 생태공원 그리고 명당으로 소문난 지실 마을과 어우러진 충효동은 내 인생의 반환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아름다운 실버의 바탕 화면임을 벌써부터 느끼게 한 것이다. 먼 훗날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충효동 842번지는 이미 등기부에 내 이름 석자를 새겨 놓았다.

병풍처럼 둘러 쌓여있는 주위 산들은 내가 꿈꾸는 희망처럼 항상 푸르기만 하다. 광주호수 또한 어찌하여 세월과 세상시련에 입씨름 하지 않는 강태공만 영접하겠는가! 봄철이면 철쭉과 벚꽃맞이 상춘객들로 주차장은 마냥 좁아진다. 식영정 마루에 걸터앉아 서석대를 바라보노라면 나 또한 송강처럼 시 한수가 입가에서 머뭇거린다. 뒷마당 비석에 새겨놓은 성산별곡은 이해 될 때까지 읽고 또 읽어도 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래서 한문과 옛글은 많은 공부가 필요한가 보다.

절벽 같은 돌계단 따라 내려가니 풍광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토속음식점들은 항상 문전 성시를 이루고,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가사문학관 주차장엔 수학여행 온 대형버스를 비롯한 많은 차들이 한꺼번에 관광객을 내려놓아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처럼 사복으로 갈아 입은 학생들은 애써 어른스럽게 보이려 하지만 뛰노는 참모습은 소박하기만 하다. 손잡고 다정스레 거니는 연인들의 화평한 웃음소리는 어찌 나를 초라하게 만들까만..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

몇 걸음 더 걸으니 자연과 인공으로 이루어낸 조선중기의 명원, 소쇄원은 담양의 명물 대나무 숲속에 숨고 또 숨었지만 역사 숨소리가 세어 나와서인지 지인과 관광객 발길은 사시사철 끊이지를 않는다. 소쇄원은 양산보 아호 소쇄옹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한 정원을 뜻한다고 한다. 양산보는 1519년 17세 때 현량과에 합격했으나 나이가 어려 벼슬에는 나가지 못했다. 그해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유배되어 죽게 됨을 애달게 여겨 마음을 비우고 달래려 이곳에 정착했다지만, 나의 미래는 실버의 아름다움을 충만하게 만끽하며 그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적 현장과 혼을 어루만지고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데 있다.

호남 교육의 본당, 충의 교육원으로 들어서니 학창시절 추억이 떠올라 사진 몇 장 찍었건만 얼굴에 주름살과 아랫배 툭 불거진 내 모습은 먼 훗날 노인당 제출용으로 만족을 느껴야 할 것 같다. 해는 서산에 매달리고 다리가 너무 무거워 다원 찻집에 여장을 풀었다. 찻집 통유리 넘어 풍경 좋은 곳에는 하얀 드레스와 택시도 입은 예비신랑 신부가 사랑스런 포즈로 추억을 장만한다. 마치 선남선녀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어느 순간, 35년 전 나의 모습으로 착각에 빠져들게 해 버린다.

우리 집 가는 길, 주위엔 풍암정도 있다. 토방 앞 계곡으로 무등산 맑은 물이 흐르고 바람결에 나부낀 억새풀 밭에서 놀다간 연인들 그림자와 봄의 훈풍은 보이지 않지만, 역사의 발자취 목판은 퇴색된 체 덩그러니 서서 내 눈을 멈추게 한다. 우리집 모퉁이엔 400년 된 당산나무가 동네사람 인심을 대신하듯, 노점상에겐 그늘이 되고 관광객에게는 쉼터가 되어준다. 수리마을 중심에 자리한 우리 집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생가와 마주하며 무등산 상봉을 바라본다. 지금은 화가님과 함께한 미술관이지만 그래도 시간 나면 달려가 노년의 삶, 현장 실습처럼 돌 틈새 풀도 뽑고 나무 가꾸며 땀을 흘리곤 한다. 철따라 텃밭에서 내 손수 가꾼 유기농 채소는 가끔 약초 같은 느낌으로 밥상에 오른다.

언젠가는 이곳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다람쥐를 벗 삼아 도토리 따다 묵 만들어 그대랑 잔디밭에서 막걸리잔 나누리라. 산새들이 평화롭게 노래하면 나 또한 시 읊으며 그들과 공감도 하련다. 늙어서 부귀영화가 무엇이며 진주 보화가 넘치면 무엇 하리오. 노년의 아름다움은 건강의 햇살이 내 가슴에 비추어 주면 되는 것을…. 행복 또한 작은 것일지라도 “내 느낌에 있다”라고 선인들 비석에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나는 충효동에서 자연을 친구하며 하얀 마음으로 노년을 아름답게 보내련다.

                                                          2009. 4. 9.  2회 회장  - 正 岩  안 정 산 -